2021. 7. 14 묵상나눔(X2, 한영대조) > 묵상나눔

본문 바로가기

묵상나눔

2021. 7. 14 묵상나눔(X2, 한영대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Kevin
댓글 0건 조회 4,537회 작성일 21-07-15 11:18

본문

2021. 7. 14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여호수아 6장, 누가복음 10:25-42
오늘의 한 구절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10:37)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께 찾아와 영생의 방법을 묻는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가르침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는 네가 알고 있는 대로 행하라 하신다.
그러자 이 율법교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누가 그의 이웃이냐? 라고 반문하시며 결론 하신다.
이 율법학자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선택적인 이웃에 대한 개념을 가졌다.
내가 아는 사람, 친근한 사람, 생각과 뜻이 같은 사람, 내가 친근함을 느끼는 사람 등
내가 사랑 할 수 있는 대상이 그의 이웃의 한계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누가 그의 이웃이냐고 물으시며
타인 중심적이고, 피 선택적인 이웃의 개념을 말씀하신다.
즉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은 내가 선택하는 범위를 넘어 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인류라는 엄청난 범위의 확장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과 섬김의 한계 역시 그 바운드리를 붕괴시키신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쳐간 제사장과 레위인이 바로 그 바운드리이다.
이들은 모두 성전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일 죽은 자를 만지면 민수기 19장의 율법에 의해 7일간 부정하여 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7일간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에 이 두 사람은 처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일이 우선이었기에 안타깝지만 그 자리를 피해 자신들이 부정해지는 일을 피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결정은 충분히 존중 받아야하는 종교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이웃 삼기를 포기했고 동시에 이웃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웃을 향한 “네 자신같이” 라는 말씀은
남는 것 나눠 주는 정도가 아니고,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가 아니고,
내 것 먼저 챙기고나서 가 아니라,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내가 내 할 일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손을 내 밀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이웃 사랑은 내가 원하는 이웃의
내가 원하는 정도의
내가 원하는 정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웃 되어 주기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그의 필요와
그의 생명을 위해
마치 그 필요와 생명이 나의 필요인듯 나누는
그 사랑을 예수는 요구하신다.
어쩌면 예수 이외에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그렇기에 오늘도 또 한 번 그 분 앞에 무릎 꿇고
그 분 앞에 겸손해진다.
그리고 성령께 간구한다.
그 분의 향기를 가질 수 있도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