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4 묵상나눔(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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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4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사무엘상 4-5장. 누가복음 24:1-12
오늘의 한 구절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124:1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은 향품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으로 간다.
그들은 예수께서 삼일 만에 부활 하시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단지 안식일이 시작되어 시신에 향료를 부어 드리지 못한 것이 걸려 늦었지만,
안식 후 첫 새벽에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천사들의 깨우침으로 비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부활의 예언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서 알린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사도들 역시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헛소리로 취급했다.
이들 역시 예수의 부활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들은 이 중요한 선생님의 예언을 듣고도 기억하지 못했을까?
이것이 인가의 사고의 한계인 것을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내에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의 이해의 한계로서는 죽음 이후의 부활은 동의의 대상도, 기대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말은 그들에게 오히려 헛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 것들에 대한 동의와 기대를 우리는 믿음이라 부른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이성과 지혜와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속과 부활과 영생의 영역을 당신이 스스로 보여주심을 통해
기대하고 소망하고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보여주심은 성경을 통해 그리고 입에서 입을 통해 오늘날까지 증거되고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해 주신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과 예수의 사역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이다.
기독교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사랑이다. 라고 말 한다.
이것이 예수의 모든 사역을 왜곡하고,
예수를 믿는 것을 생명이 아닌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연약하게 만들어 버린 이유이다.
역사속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사랑 때문에 생명을 던진 것이 아님을 왜 애써 부인하려 하는가?
그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고 기대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미련없이 던질 수 있었음을 왜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확실히 믿고 기대하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을 증거함을 확고히 믿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생명이고 형식적으로는 사랑이다.
근본적인 생명을 소유하는 자만이 보일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생명을 소유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성육신의 본질인
용서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믿어지는
은혜에 오늘도 감사하며
그 앞에 무릎 꿇는다.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사무엘상 4-5장. 누가복음 24:1-12
오늘의 한 구절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124:1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은 향품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으로 간다.
그들은 예수께서 삼일 만에 부활 하시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단지 안식일이 시작되어 시신에 향료를 부어 드리지 못한 것이 걸려 늦었지만,
안식 후 첫 새벽에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천사들의 깨우침으로 비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부활의 예언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서 알린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사도들 역시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헛소리로 취급했다.
이들 역시 예수의 부활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들은 이 중요한 선생님의 예언을 듣고도 기억하지 못했을까?
이것이 인가의 사고의 한계인 것을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내에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의 이해의 한계로서는 죽음 이후의 부활은 동의의 대상도, 기대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말은 그들에게 오히려 헛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 것들에 대한 동의와 기대를 우리는 믿음이라 부른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이성과 지혜와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속과 부활과 영생의 영역을 당신이 스스로 보여주심을 통해
기대하고 소망하고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보여주심은 성경을 통해 그리고 입에서 입을 통해 오늘날까지 증거되고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해 주신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과 예수의 사역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이다.
기독교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사랑이다. 라고 말 한다.
이것이 예수의 모든 사역을 왜곡하고,
예수를 믿는 것을 생명이 아닌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연약하게 만들어 버린 이유이다.
역사속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사랑 때문에 생명을 던진 것이 아님을 왜 애써 부인하려 하는가?
그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고 기대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미련없이 던질 수 있었음을 왜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확실히 믿고 기대하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을 증거함을 확고히 믿는 신앙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생명이고 형식적으로는 사랑이다.
근본적인 생명을 소유하는 자만이 보일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생명을 소유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예수의 성육신의 본질인
용서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믿어지는
은혜에 오늘도 감사하며
그 앞에 무릎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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