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1 허승호 목사의 묵상나눔 (x2 한영대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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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범위: 창세기 25장, 마태복음 8:18-34
오늘의 한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2)
마태복음 8:18-22는 첫번째 3 기적과 두번째 3 기적사이의 짧은 삽입 강화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어찌보면 동문서답 같고, 어찌보면 인륜을 저버리시는 것 같아 보인다.
먼저 한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 하는데,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허락이나 거절이 아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 한 청년이 와서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와서 예수를 따르겠다 하는데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대답 하신다.
하지만 이 짧은 강화에는 제자도에 대한 깊은 의미가 숨어있다.
처음의 서기관은 아마도 그 많은 서기관들 중에 탁월하지도, 유명하지도, 미래가 밝지도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런 그가 예수의 가르침도 듣고, 기적도 보고 나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예수께 모험을 걸어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그의 의도가 오직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라는 불순한 의도였음을 아셨다. 그렇기에 “나를 따라오면 아마도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니?” 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역시 장례문화가 상당히 화려하다. 부모의 장례를 얼마나 잘 치르느냐가 자신의 효를 보이고 또 돌아가신 부모의 덕으로 잘 살고,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샤머니즘 적인 문화에서 온 결과이다.
두 번째 청년에게 하신 대답은 이 관점에서 이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생명을 살리시고 또 환자들을 치료 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이 청년은 아직도 죽음에 대한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를 앞에 두고 아직도 죽은 자의 모습으로, 죽은 자 가운데 머무르기를 원하던 청년에게 예수께서는 이제 생명의 길로 나오라고 주문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마태는 또 다른 3가지 기적을 기록한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 귀신들린 두 사람의 구원, 그리고 지붕을 뚫고 예수 앞에 나온 중풍병 걸린 아이의 치료 사건이다.
이 세 사건은 앞의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대답이다.
집도 없이 노숙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어 가시는 예수의 참 가치는 자연도 다스리시는 그 능력에 있고, 악한 영의 군대도 다스리시는 그분의 영적 권위에 있고, 어린 아이가 걸리기는 거의 불가능한 중풍병에 걸리게 한 세상의 죄와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용서 하실 수 있는 메시아의 권능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권능을 사욕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한 서기관,
생명 되신 예수와 함께 하면서도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과 샤머니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청년!
이들이 결국은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닌가?
나는 왜 예수를 따르는가?
왜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 하는가?
세상에서는 노숙자가 되고 천국에서는 면류관을 쓰는 것이 제자의 삶임을 예수님은 마태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 영광을 위해
기꺼이 이 땅에서 노숙자의 길을 선택 할 수 있을까?
주여!!!!
오늘의 한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2)
마태복음 8:18-22는 첫번째 3 기적과 두번째 3 기적사이의 짧은 삽입 강화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어찌보면 동문서답 같고, 어찌보면 인륜을 저버리시는 것 같아 보인다.
먼저 한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 하는데,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허락이나 거절이 아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 한 청년이 와서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와서 예수를 따르겠다 하는데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대답 하신다.
하지만 이 짧은 강화에는 제자도에 대한 깊은 의미가 숨어있다.
처음의 서기관은 아마도 그 많은 서기관들 중에 탁월하지도, 유명하지도, 미래가 밝지도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런 그가 예수의 가르침도 듣고, 기적도 보고 나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예수께 모험을 걸어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그의 의도가 오직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라는 불순한 의도였음을 아셨다. 그렇기에 “나를 따라오면 아마도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니?” 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역시 장례문화가 상당히 화려하다. 부모의 장례를 얼마나 잘 치르느냐가 자신의 효를 보이고 또 돌아가신 부모의 덕으로 잘 살고,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샤머니즘 적인 문화에서 온 결과이다.
두 번째 청년에게 하신 대답은 이 관점에서 이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생명을 살리시고 또 환자들을 치료 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이 청년은 아직도 죽음에 대한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를 앞에 두고 아직도 죽은 자의 모습으로, 죽은 자 가운데 머무르기를 원하던 청년에게 예수께서는 이제 생명의 길로 나오라고 주문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마태는 또 다른 3가지 기적을 기록한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 귀신들린 두 사람의 구원, 그리고 지붕을 뚫고 예수 앞에 나온 중풍병 걸린 아이의 치료 사건이다.
이 세 사건은 앞의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대답이다.
집도 없이 노숙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어 가시는 예수의 참 가치는 자연도 다스리시는 그 능력에 있고, 악한 영의 군대도 다스리시는 그분의 영적 권위에 있고, 어린 아이가 걸리기는 거의 불가능한 중풍병에 걸리게 한 세상의 죄와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용서 하실 수 있는 메시아의 권능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권능을 사욕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한 서기관,
생명 되신 예수와 함께 하면서도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과 샤머니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청년!
이들이 결국은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닌가?
나는 왜 예수를 따르는가?
왜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 하는가?
세상에서는 노숙자가 되고 천국에서는 면류관을 쓰는 것이 제자의 삶임을 예수님은 마태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 영광을 위해
기꺼이 이 땅에서 노숙자의 길을 선택 할 수 있을까?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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