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5 묵상나눔(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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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범위: 레위기 7장, 마가복음 1:29-45
오늘의 한 구절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막1:31)
오늘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보면 왜 성경에 그것도 모든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더 많은 엄청난 치유의 사역을 하셨는데 열병을 치료하신 것 정도가 그렇게 이슈가 될 사건인가?
베드로의 장모가 그 대상이어서 인가?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이 기록의 첫번째 이유는 이 사역을 행하신 시간 때문이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아직 안식일 해가 지기 전에 예수께서는 또 한 번 안식일을 범하시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율법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함을 말하기 위함이다.
둘째 이유는 예수께 이 여인의 병들어 있음을 말한 것이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고 굳이 기록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1세기 당시 자기의 배를 가지고 있는 어부는 가난한 어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부유하지 못한 나라들의 한적한 어촌에 가면 배 한 척을 가진 어부는 그 마을의 유지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은 그리 가난했던 어부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이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을 자랑하기도 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장모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평탄하게 살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미치광이라 말 하기도 하는 예수라는 청년을 따라다니며 가정을 팽개친 사위를 생각 하면 울화가 났을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화병이 생겼을 것이고, 딸의 집에 와서 들어 누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베드로는 차마 예수께 말 하지 못했을 것이고, 주변의 동료들이 예수께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그 집을 찾아가신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를 만나 주셨다.
마가복음은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마태복음은 “그의 손을 만지셨다” 누가복음은 “꾸짖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손을 잡고 위로 하시고 잡아 일으키시며 “악한 영은 떠나라” 꾸짖으시며 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 여인은 곧장 일어나 예수의 일행, 아니 자기 사위의 일행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수종 들게 된다. 섬기게 된다.
그리고 후에 베드로의 아내는 베드로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는(고전9:5)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다.
이 만남은 어떤 기적이나 신비로운 사건을 기대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내 구주로 진심으로 믿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중생이고, 구원의 확신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 부활이 우리에게 임할 것임을 믿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 부활에 참여할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예수를 만난 기억이 있는가?
아직 베드로의 장모의 자리에 있다면, 이제 주께 내 손을 맡겨 드리기를 소원한다.
다정히 손잡아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꾸짖어 회복해 주실 그 분 앞에
겸손히 내 화를 고백하며……
오늘의 한 구절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막1:31)
오늘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보면 왜 성경에 그것도 모든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더 많은 엄청난 치유의 사역을 하셨는데 열병을 치료하신 것 정도가 그렇게 이슈가 될 사건인가?
베드로의 장모가 그 대상이어서 인가?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이 기록의 첫번째 이유는 이 사역을 행하신 시간 때문이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아직 안식일 해가 지기 전에 예수께서는 또 한 번 안식일을 범하시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율법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함을 말하기 위함이다.
둘째 이유는 예수께 이 여인의 병들어 있음을 말한 것이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고 굳이 기록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1세기 당시 자기의 배를 가지고 있는 어부는 가난한 어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부유하지 못한 나라들의 한적한 어촌에 가면 배 한 척을 가진 어부는 그 마을의 유지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은 그리 가난했던 어부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이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을 자랑하기도 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장모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평탄하게 살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미치광이라 말 하기도 하는 예수라는 청년을 따라다니며 가정을 팽개친 사위를 생각 하면 울화가 났을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화병이 생겼을 것이고, 딸의 집에 와서 들어 누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베드로는 차마 예수께 말 하지 못했을 것이고, 주변의 동료들이 예수께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그 집을 찾아가신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를 만나 주셨다.
마가복음은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마태복음은 “그의 손을 만지셨다” 누가복음은 “꾸짖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손을 잡고 위로 하시고 잡아 일으키시며 “악한 영은 떠나라” 꾸짖으시며 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 여인은 곧장 일어나 예수의 일행, 아니 자기 사위의 일행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수종 들게 된다. 섬기게 된다.
그리고 후에 베드로의 아내는 베드로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는(고전9:5)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다.
이 만남은 어떤 기적이나 신비로운 사건을 기대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내 구주로 진심으로 믿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중생이고, 구원의 확신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 부활이 우리에게 임할 것임을 믿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정말 부활에 참여할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예수를 만난 기억이 있는가?
아직 베드로의 장모의 자리에 있다면, 이제 주께 내 손을 맡겨 드리기를 소원한다.
다정히 손잡아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꾸짖어 회복해 주실 그 분 앞에
겸손히 내 화를 고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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