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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7 묵상나눔(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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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evin
댓글 0건 조회 4,738회 작성일 21-04-1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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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범위: 레위기 20-21장, 마가복음 5:21-34
오늘의 한 구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5:33)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그의 병이 낳게 된다.
많은 군중들 사이에 뒤엉킨 상태에서 슬쩍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을 뿐인데 그녀는 낳음을 입었음을 느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녀가 손 대었음을 아시고 물으신다. 
그때 이 여인은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 엎드려 자복하고 있다.
이 여인은 신앙적인 믿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술적인 의미로라도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가졌다.
그런데 왜 두려워했을까? 두려움 대신 감사를 표 했어야 맞는 것 아닐까?
이 여인은 유출병, 곧 혈루증 환자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의 유대 율법으로 유출병 환자는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누구와 접촉하거나, 심지어 환자가 앉았던 의자에 앉기만 해도 부정하게 되는 부정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여인은 자신의 다급함과 간절함 때문에 예수를 부정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당시의 율법을 범한 것이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이 모든 일 가운데 이루어진 진실을 두려워 떨면서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을 선언 받는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당신이 이루실 일을 미리 보여주신다.
이 여인처럼 부정한 자들의 모든 부정을 안고 당신이 부정해지시고 대신 부정한 자들을 정결케 하시고 평안히 가게 하시는 당신의 사명을 보여주신다.
부정한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부정함을 그 예수께 전가하는 송구하고 뻔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부정함을 기꺼이 기쁨으로 받으신다.
그리고 깨끗함을 허락하시고 선포해 주신다.
“이렇게 결심하고 죽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나를 믿고 내게 왔구나
그 믿음으로 너는 구원을 얻었다. 이제 평안히 가서 더 이상 사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영생의 기쁨 속에서 건강 하거라, 자유 하거라”
많던 군중들 중에 예수를 만진 자는 이 여인 외에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이른 것은 오직 이 부정하여 그 무리에 들어갈 수 없던 한 여인 뿐이었다.
나는 왜 예수 곁에 있는 것일까?
예수를 만지고, 그와 함께 있고자 하고, 그를 따르면서도
이 여인과 같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간절함으로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예수께 손을 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제자들을 포함한 다른 많은 군중들처럼 그저 예수를 구경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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