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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2021. 5. 26 묵상나눔(X2, 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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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evin
댓글 0건 조회 4,284회 작성일 21-05-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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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6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민수기 27장, 마가복음 14:43-51
오늘의 한 구절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막14:50)

대 제사장이 보낸 군사들과 그들을 대동한 유다가 등장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중의 한 명을 칼을 휘둘러 귀를 잘라내며 저항한다.
아직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항해서 기적을 베풀어 물리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오늘 밤이 D-Day인가 보다 하며 내심 예수의 행보를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태도에서 제자들은 모두 절망감을 맛보게 된다.
마가복음에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 보면 잘려 떨어진 귀를 붙여 주시고, 오히려 저항한 베드로를 책망하신다.
그리고 순순히 그들에게 마치 죄인이 잡혀가듯 잡혀 가신다.
그리고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다” 라는 제자들이 듣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말씀을 남기신다.
구약의 많은 부분에서 성경은 이렇게 고난의 종, 은 30에 팔릴 종을 예언했다. (사53, 슥11 등)
하지만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이 제자들에게는 예언의 실현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이제 반역과 신성모독의 죄를 받아야 하는 실패한 반역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제자들의 선택은 함께 예수와 잡혀 가서 반역의 죄를 당하든지 아니면 일단 그 자리를 도망하여 모면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들은 도망을 선택한다.
심지어 한 제자는 잠결에 예수를 따라 나왔다가 알몸으로 도망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 선택에 있어서 어떤 고민과 생각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본능에 의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도망한자나, 예수를 판 자나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가롯 유다는 예수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채워줄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그를 배반했고
다른 제자들 역시 자신들이 원했던 것을 예수가 채워 주지 않을 것을 직감하자 지금까지의 신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려움이 엄습하게 되고 그 두려움은 본능적으로 배반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이다.
예수를 향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를 향한 내 기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었는가?
예수를 향한 내 기대가 병고침의 치유의 기적이었는가?
예수를 향한 내 기대가 가롯유다 처럼 그리고 다른 제자들처럼 사회적 변혁을 동반한 지위상승과 권력이었던가?
그 기대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예수의 십자가에 그를 향했던 나의 헛된 기대들도 함께 못박혔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도망해서 갈릴리 바닷가에 숨어 있던 나에게
부활의 예수는 찾아오신다.
그를 향한 참 기대를 내 마음에 부활시키신다.
예수와 함께하는 하나님 나라에의 영원한 생명의 기대를 심어 주신다.
이 땅에서 그 나라를 감사와 소망으로 경험하는 기대를 심어 주신다.
이미 시작된 그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는 기대를 심어 주신다.
벌거벗은 채 도망한 나에게……
갈릴리까지 도망해서 숨어있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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